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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술은 마시면 취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물이다. 운동과 사고 능력이 저하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어느 나라건 음주운전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하물며 살인병기를 들고 목숨을 건 한판승부를 벌여야 하는 전쟁터에서 과연 술은 승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필자는 많은 중국인들을 만나 보았고 매 번 술이 빠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다만 그들이 마시는 술은 화학주가 아닌 곡주라서 몸에 덜 해롭고 다음 날 머리도 아프지 않는 것 같다. 중국인들의 말에 따르면 허기져 힘이 없을 때 술을 마시면 기력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필자는 지금껏 중국인들과 1박 2일에 걸쳐 술을 마셔보기도 했지만 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이는 섬서성 한 탄광회사의 사장이었다.
그 곳은 주변경관이 매우 빼어난 곳이었다. 탄광지역만 아니었다면 무릉도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 아름다운 곳에서도 낮 동안의 기나긴 비즈니스를 끝내고 나면 어김없이 황혼이 다가온다. 어느 날 우리는 그 탄광회사의 식당 2층으로 초대되어 갔다. 매우 추운 겨울날이었다.
한국대표단은 4명이었다. 한 명은 이십 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 또 한 명은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50대의 기술사였다. 그는 H씨다. 또 한 명은 30대 후반, 마지막으로 필자였다. 참고로 필자는 주량에는 자신이 없는 편이다. 기나긴 중국출장기간 중 매일 저녁 음주에 시달려 체력이 동나버린 우리는 그 날 빨리 만찬자리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나름의 작전을 짜보았다.
바로, 상대 회사의 대표이사를 빨리 취하게 해서 자리를 일찍 파하게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순번에 따라, 먼저 20대 후반의 청년이 머그컵만한 술잔에 50도짜리 백주를 그득히 따라 중국인 대표이사와 함께 원샷을 2차례 했다. 임무를 다한 그는 그 자리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리더니 이윽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음은 H씨의 차례였다. 그도 연거푸 두 잔을 중국회사의 대표이사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이내 이성을 잃더니 동석한 기혼여성들에게 "beautiful"을 연발하며 추태를 부려대기 시작하였다. 이런 식으로 탄광회사의 대표는 짧은 시간 안에 총 6잔에 이르는 독한 술을 마셨다. 작은 술잔이 아니라 머그컵만한 제법 큰 술잔에 마셨기 때문에 필자 같은 사람이 마셨다면 치사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다. 그러나 깡마른 그의 자태는 우아한 학처럼 조금의 흔들림이 없었고 시종일관 여유 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 우리는 마치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았다.
喝酒不是比赛(hē jiǔ bú shì bǐ sài)(허지우부쓰비싸이)
“술을 마시는 것은 시합이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喝(hē)는 ‘마시다’, 酒(jiǔ)는 ‘술’, 是(shì)는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이다’는 뜻.
여기에 영어의 not에 해당하는 不(bú)가 들어가 不是(bú shì), 즉 ‘∼가 아니다’라는
뜻이 된다. 比赛(bǐ sài)은 ‘시합’, ‘경기’의 뜻을 지니고 있다.
중국인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상대방이 필요이상 잔을 강권할 때
요령 있게 쓰면 유용한 표현이다. 좀 천천히 마시자는 의미로 의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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