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파트너로 만든 기획통 ‘서부발전’
적을 파트너로 만든 기획통 ‘서부발전’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23.04.0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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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유럽 재생E 시장에서 사업자 지위 얻으며 시장 진출 성공
위축된 재생E 시장 불구 EDF-R과 함께 오만 태양광발전 수주
이를 계기로 중동‧북아프리카 재생E‧그린수소 사업 속도 점쳐져

【에너지타임즈】 급변하는 시대에는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진다. 미래를 어떻게 대비하느냐는 기업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미래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느냐와 여기서 멈추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에너지 시장에도 변화의 큰바람이 불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중심의 탄소 시대가 기후변화란 벽에 부딪혀 퇴출이란 강한 압박을 받아 저물어가는 반면 더는 화석연료에 의지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와 수소, 원전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화석연료 기반으로 출발하고 성장해온 서부발전도 에너지 전환이란 큰 변화의 물결에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비공식적이지만 2001년 한전에서 분사될 때 한전에서 기획통으로 불리던 일부 직원들이 서부발전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서부발전은 한전으로부터 기획력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서부발전이 한전으로부터 물려받은 DNA를 자사 맞춤형으로 진화시킨 기획력을 바탕으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래 시장에서 추진하게 될 사업의 실패를 최소화하는 한편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행동에 나설 수 없는 이 전략엔 발품을 팔아 모은 정보를 냉철하게 분석한 서부발전 직원의 피땀이 조용하지만 임팩트 있는 최고경영자 의사결정이 만나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 성공한 서부발전의 해외 사업은 우연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결과다. 그리고 지금의 성공은 시작의 신호탄이다.

서부발전 본사(충남 태안군 소재) 전경.
서부발전 본사(충남 태안군 소재) 전경.

서부발전 해외 사업은 에너지 전환이란 시대적 요구가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준비 기간이 길수록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물론 구성원 피땀이란 자양분이 동반됐을 때 그렇다.

지속 가능한 사업 포트폴리오는 풍부한 정보와 함께 철저한 분석, 그리고 계산된 전략이 뒤따를 때 만들어진다.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반을 다질 수 있는 물리적 시간과 함께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치밀한 전략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부발전은 2018년경 재생에너지 시장 진입이 상대적으로 쉬운 동남아보다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고 다양한 정책이 뒷받침되고 있는 현재 지구상 최고의 시장으로 손꼽히는 유럽 시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장 진입이 쉽지 않지만 시장에 진입했을 땐 안정된 사업과 함께 이곳에서 얻은 경험은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에 집중할 때 유럽 시장을 선택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쉽지 않은 시장에 도전장을 낸 만큼 서부발전은 개발부터 건설, 운영까지 속도감 있게 사업자 지위를 얻어야 하는 과제를 직면했다. 그러면서 선진화된 금융시장인 유럽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금융에 전문성을 가진 직원들을 전진 배치했다.

먼저 서부발전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과 함께 이미 팽창된 시장임을 고려할 때 속도를 내지 못하게 된다면 시장 진입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재생에너지 개발‧건설‧운영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획통이란 자사 DNA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운영 중인 재생에너지를 인수해 운영 실적을 얻고 이 실적을 기반으로 건설에 들어가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건설 실적을 얻은 뒤 또 이를 기반으로 재생에너지 개발을 주도해 시장에 안착하겠다는 것이 서부발전 전략이다.

서부발전은 유럽 재생에너지 시장 거점 국가로 핀란드를 선택했다. 2020년 6월 핀란드 아담스 풍력발전단지(발전설비용량 73.2MW)를 인수하면서 유럽 시장에서 운영 사업자 지위를 얻었다.

이 발전소는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 북쪽 667km 지점에 건설돼 2015년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바 있다.

이 발전소는 유럽 시장에서 보기 드문 알짜사업으로 손꼽혔다. 유럽 시장 진출을 갈망했던 서부발전, 안정적인 투자를 원했던 금융기관, 또 다른 투자를 위해 재원이 필요했던 개발사 등의 입장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서부발전은 유럽 재생에너지 시장에 무리 없이 진출하게 된 것이다. 서부발전 직원의 발품과 함께 전략적 분석이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부발전 직원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사진을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알짜였다는 것이다. 이사진이 우수한 매물이란 점에 의혹을 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서부발전은 핀란드 인접국인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 북쪽 437km 지점에 발전설비용량 240.8MW(4.3MW×56기)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는 스웨덴 클라우드 풍력발전사업을 추진했다. 건설과정에 함께 함으로써 재생에너지 건설에 대한 실적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핀란드 아담스풍력발전단지 전경.
핀란드 아담스풍력발전단지 전경.

이로써 서부발전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 재생에너지 시장 진입에 성공하게 됐다. 그리고 많은 러브콜을 받아 다양한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다만 코로나-19 여파와 글로벌 침체, 고인플레이션 등의 여파로 재생에너지 사업 여건이 좋지 못하게 되자 중동으로 눈을 돌렸다. 중동은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과 함께 오일머니 때문에 세계 경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이다.

오만은 2019년 수도 무스타크(Muscat)에서 남서쪽으로 170km 떨어진 마나(Manah)지역에 자국 최대 태양광발전단지 중 최대인 발전설비용량 1000MW 규모의 마나 태양광발전사업을 2단계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서부발전은 유럽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얻은 사업자 지위를 바탕으로 이 프로젝트 참여를 결정하고 2019년 7월 사전적격심사(PQ)를 통과하는 등 수주 가능성을 높였다.

다만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됐던 이 프로젝트는 오만 현지에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게 됐다. 지역주민 민원과 함께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가봉쇄 등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서부발전도 위기에 직면했다. 예정 부지 변경과 함께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파트너의 사업 포기 등 악재에 부딪히면서 사업을 포기해야 할 시점에 귀인을 만났다. 바로 이 프로젝트 PQ를 통과한 경쟁사인 프랑스 국영전력회사 EDF의 재생에너지 자회사인 EDF-R과의 관계가 경쟁사에서 동반자로 바뀐 것이다.

서부발전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전설비용량 16GW에 달하는 재생에너지를 개발‧건설‧운영하고 있는 EDF-R의 EPC 능력이 필요했고, EDF-R은 안정적인 기업 신용도와 우수한 금융 조달 능력을 보유한 서부발전의 재원 조달 능력이 필요했다. 서로의 부족함이 채워지면서 경쟁자에서 동반자가 된 것이다. 특히 서부발전이 유럽 에너지 시장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능력을 강화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부발전이 수주한 500MW 규모 오만 마나1 태양광발전소 위치.
서부발전이 수주한 500MW 규모 오만 마나1 태양광발전소 위치.

그 결과 서부발전은 지난달 EDF-R과 함께 오만수전력조달공사에서 발주한 500MW 규모의 오만 마나1 태양광발전사업을 수주했다. 우리 기업이 오만 재생에너지 시장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이 프로젝트에서 서부발전은 재원 조달, EDF-R은 EPC를 각각 맡았다. 그리고 운영을 공동으로 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서부발전은 16GW에 달하는 재생에너지를 운영한 EDF-R의 경험을 습득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EDF-R이 서부발전과 운영을 함께 하기로 한 것도 서부발전과 동반자로서 절실함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 조용하게 임팩트 있는 박형덕 사장이 프랑스로 날아갔다. EDF-R과의 협상 과정과 오만 프로젝트 수주과정에서 EDF-R과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신속한 의사결정이란 박 사장 특유의 뚝심이 발휘된 것이다.

지난 27일 박 사장은 EDF-R 사장이자 EDF 수석부사장을 만나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재생에너지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수소 생산 사업을 강화하기로 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해볼까란 애매모호 한 의미보다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흔히 알려진 업무협약은 신뢰의 기반이 되곤 하지만 이 협약은 이미 구축된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본격적인 사업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아랍에미리트(UAE)는 곧 GW급 재생에너지 입찰을 낼 계획이고, 그에 대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서부발전은 에너지 전환에 따른 수소‧암모니아발전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수소 확보는 미래를 담보하는 또 다른 과제다. 박형덕 사장은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파트너로 EDF-R을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지구촌에서 수소를 생산하기 가장 좋은 국가로 중동과 호주가 손꼽힌다.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린수소를 수입해야만 하는 우리는 재생에너지 자원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서부발전은 국경을 뛰어넘어 재생에너지사업을 하는 EDF-R의 재생에너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박형덕 사장은 “오만 태양광발전 수주는 서부발전이 재생에너지 국제 경쟁력을 보여준 첫 사례”라고 평가하면서 “이를 계기로 서부발전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태양광발전과 그린수소 등 추가 사업을 위한 행보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EDF-R을 방문한 박형덕 서부발전 사장이 EDF-R 관계자로부터 EDF-R 사업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있다.
프랑스 EDF-R을 방문한 박형덕 서부발전 사장이 EDF-R 관계자로부터 EDF-R 사업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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