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년 전 시작된 전기역사…깨어나는 위대한 유산
135년 전 시작된 전기역사…깨어나는 위대한 유산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22.05.1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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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로 궁궐에 전깃불을 밝힌 우수한 전기문화 유산 갖고 있어
첫 발전소 동양에서 가장 성능 뛰어나…백열등 750개 켤 수 있는 규모
에디슨 백열전등 발견 8년 만에 경복궁 내 건청궁에 국내 첫 전등 점등
전기역사 뿌리 찾는 한편 고증·복원·재현·활용 등 대형 프로젝트 추진
최초의 발전소 복원과 전기유물 전시관 설치, 전등 재현 등 사업 포함
전기역사 확립과 객관적 사료 제공, 정책 판단할 전기역사서 편찬 추진

【에너지타임즈】 지난 시간을 그대로 두면 과거가 되지만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면 위대한 역사가 된다.

전기는 오래전부터 삶의 한 부분이 됐다. 전기가 없어도 살 수는 있으나 지금의 삶을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대한민국 전기역사는 선진국 반열에 올린 경제발전과 재건의 역사인 동시에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시아 최초로 궁궐에 전깃불을 밝힌 우수한 전기문화 유산을 갖고 있는데 일본과 중국의 궁궐에 전깃불을 밝힌 시점보다 2년이나 앞서 있음에도 위대한 우리의 전기역사는 과거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력업계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점등일인 1900년 4월 10일을 기념해 매년 4월 10일을 전기의 날로 정하고 기념식을 격년으로 개최하고 있으나 이날이 법정 기념일이 아니란 점은 우리가 전기역사에 소홀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2009년 12월 27일 UAE원전 수출을 계기로 매년 12월 27일을 원자력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제정된 것과 비견될만한 부분이 있다.

전기업계를 대표하는 전기협회를 중심으로 전기역사의 뿌리를 찾고 고증과 복원, 재현을 넘어 그 의미에 부합될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가 본격화됐다.

2025년까지 추진되는 이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 복원과 전기유물 전시관 설치, 건청궁·향원정 일대 전등 제작·설치 등 전등 재현, 전기역사 정통성을 확립하고 균형감 있게 조명할 수 있는 전기역사서 편찬 등의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고종 24년인 1887년 3월 6일 경복궁 내 건청궁에 국내 최초로 전등 점화.
고종 24년인 1887년 3월 6일 경복궁 내 건청궁에 국내 최초로 전등 점화.

전기 도입은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흥선대원군 섭정에서 벗어나 10년 만에 친정을 하게 된 고종은 새로운 세계와 문명에 대한 많은 호기심과 수용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종이 개항을 통해 외국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는 한편 청·일본·미국 등과 연차적으로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그들의 앞선 문물을 배워오도록 사절단을 파견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의지가 남달랐던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규(朝美修好通商條規) 체결 후 이뤄진 보빙사 파견은 이후 조선의 제도와 사회체계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데 20대 개화파 청년들로 구성된 보빙사는 미국 전기회사와 철도회사, 병원, 소방서 등 근대적 국가시설과 제도 등을 둘러봤다. 이를 계기로 조선에 경복궁 전등 등의 계획이 만들어졌다.

경복궁 전등소(現 발전소) 설치는 구한말 조선 정부가 추진한 개회사업으로 추진됐으며, 1884년 궁중 전등 점등 계획에 따라 조선은 미국 에디슨전기회사에 발전설비·전등기기 일체를 발주했고, 고종 24년인 1887년 3월 6일 경복궁 내 건청궁에 국내 최초로 전등이 점화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는 보일러에서 석탄을 연소시켜 증기를 만들면 증기엔진을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설비다. 현재 운영 중인 석탄발전소와 비슷한 시스템이다. 우리나라 발전산업 시초는 석탄발전인 셈이다.

이 발전소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발전설비용량은 백열등 750개를 켤 수 있는 정도였다.

경복궁 내 건청궁에 국내 최초로 전등이 점등된 1887년 3월 6일.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견한 지 고작 8년 만에 한양에 전등이 커진 것으로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발전소는 향원정 연못에서 물을 얻어 전력을 생산했는데 냉각을 한 물인 온배수가 이 연못에 유입되면서 수온이 상승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또 성능이 완전하지 못한 탓에 자주 불이 꺼지고 비용이 많이 들어 건달에 비유되기도 했다.

다만 우리나라 최초의 전깃불이 켜진 건청궁은 1909년 일제강점기에 훼손되는 수난을 겪었다. 한-일 합병 후 조선총독부 시정오년 선물산공진회 개최와 1935년 박람회 개최를 위해 건청궁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총독부미술관을 세우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2015년 경복궁 영훈당 권역 발굴조사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 위치가 향원지 남쪽과 영훈당 북쪽 사이인 것으로 밝혔다. 한전에서 1989년에 발간한 한국전기백년사와 다른 위치다.

또 이곳에서 발전 연료인 석탄을 보관하던 탄고와 발전소 터 등 1887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졌던 발전소 유구 등이 확인됐다. 이와 함께 아크등에 사용됐던 탄소봉과 1870년이란 연대가 새겨진 유리 절연체 등 발전설비와 관련된 유물도 출토됐다.

그렇다면 전력업계에서 전기의 날로 정한 4월 10일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1898년 1월 18일 본격적인 전력사업을 위해 한성전기(주)가 설립됐다. 그리고 1899년 5월 4일 전차가 처음으로 동대문과 홍화문(現 서대문) 구간을 시험으로 운행한 날이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대중교통이 시작됐고, 인천과 노량진 간 경인선이 개통되기 4개월 전의 일이다.

당시 한양의 교통수단이 인력거와 자전거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교통의 혁명이라 불릴만한 사건이었다. 차비는 엽전 5전이었고 정류장이 없어 승객이 손을 들면 승차할 수 있었다.

한성전기는 전등 사업을 본격화하게 되는데 동대문에 발전설비용량 200kW급 발전소를 건설하고 전력을 공급했다. 그리고 1900년 4월 10일 단군 이래 처음으로 길거리에 조명용 전등이 등장했다.

전력업계는 이날을 전기의 날로 정했고, 법정 기념일은 아니나 격년에 한 번씩 전기협회 주관으로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가 위치했던 경복궁 내 건청궁.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가 위치했던 경복궁 내 건청궁.

우리나라 전기역사 속에 담긴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재조명하는 한편 경복궁 전기발상지 고증·재현·활용 등을 위해 전기협회를 중심으로 전력업계가 문화재청과 함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들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대한민국 최초의 발전소에 대한 체계적인 고증·재현·복원의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우리나라 근대문화 유산인 전기역사를 주제로 한 콘텐츠 개발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특히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건설된 발전소가 있던 경복궁 내 건청궁 일대에 전기와 관련된 역사성과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전동을 재현하고 경복궁 영훈당 권역에 대한민국 최초의 발전소 복원과 전시유물을 전시하게 된다.

또 전기협회는 130여년이 넘는 우리나라 전기역사 확립과 객관적 사료 제공, 정책 판단의 기초 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전기역사서 편찬을 추진하게 된다.

조구현 전기협회 대외협력처장은 “경복궁 점등은 기름 등불에서 산업혁명 원동력인 전기를 사용한 전등으로 바뀌게 디는 우리나라 최초의 에너지전환”이라면서 “최초의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혁신과 개혁의 역사적 상징”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최초 발전소 발굴과 복원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전기역사를 돌아보고 정리해야 할 때가 왔고 앞으로 전력업계가 뜻을 모아 문화재청과 협력과 협업체계 구축을 통해 전문가들의 고증을 잘 다듬어 역사의 흔적이 충실히 채워지도록 힘을 모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갑원 대한전기협회 상근부회장(왼쪽)과 정성조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장이 17일(화) 경복궁에서 열린  경복궁 전기발상지 고증·재현과 복원, 활용을 위한 업무 업무 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갑원 대한전기협회 상근부회장(왼쪽)과 정성조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장이 17일(화) 경복궁에서 열린 경복궁 전기발상지 고증·재현과 복원, 활용을 위한 업무 업무 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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