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공기업 이사회의 ‘천태만상(千態萬象)’
<기자의눈> 공기업 이사회의 ‘천태만상(千態萬象)’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09.04.03 19: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정부에서 공기업의 정원을 감축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에너지공기업은 노동조합의 원천봉쇄를 피해 비밀리에 이사회를 열어 졸속으로 정원감축(안)을 처리했다. 이사회 저지에 나선 노동조합은 한계에 부딪혀 맥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지난달 25일 한전은 이사회를 열어 이 안을 제외한 다른 안건을 통과시켜 어느 정도 일단락 되는 양상을 보였으나 문제는 다음날 가스공사 이사회가 두 차례에 걸친 이사회 장소 변경으로 이 안을 통과시킨 것.

가스공사 노조 관계자는 “처음 이사회 장소는 서울 인근의 모 식당이었고 조합원이 이 장소를 찾았을 때 명패만 있었다”며 “수소문 끝에 두 번째 장소를 찾았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고 허탈해 했다.

지난달 30일 이를 발판으로 한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에너지공기업들이 결전에 나섰다. 전력노조 관계자는 “당초 한전은 회사에서 이사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이날 새벽 모 호텔에서 조찬형식으로 이사회를 통과시켰다”며 “그 동안 한전은 이사회 장소를 회사에서 벗어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었던 것이 판단미스였다”고 그 날을 회상했다.

같은 날 열린 발전5사 이사회도 서울의 모 호텔에서 열렸다. 발전노조 관계자는 노조원이 이사들의 뒤를 따라붙었으나 택시를 타고 가는 바람에 이사회 저지에 실패했다고 속내를 털어 났다.

지난달 31일 열린 한수원 이사회에 앞서 한수원 노조는 전날 임원 표시등을 주시했으나 저녁 9시경 계속 켜져 있는 표시등이 수상해 노조원이 찾아갔으나 이사는 이미 부재중이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번 에너지공기업 이사회에서 A 공기업의 이사 집 앞에서 기다린 노조원들이 있었으나 이사는 집에 오지 않았고 B 공기업의 한 사외이사는 이사회 장소 변경에 대한 정보를 미처 듣지 못하고 이사회 참석을 위해 회사를 방문하기도 했었다.

이번 사태는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했다. 안건에 대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기업보다 투명하고 공정해야 할 공기업이 비밀리에 이사회를 열고 안건을 통과시킨 것 자체만으로 공기업 스스로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공기업 경영진도 현실을 감안한 대응 없이 정부의 외압에 막무가내로 흔들린 점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다. 이제라도 정부나 공기업 경영진은 공기업의 주인이 국민임을 인식하고 국민의 기업인 공기업을 최고의 기업으로 키우는 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