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영덕원전 주민투표! 그날이 아픈가?
[데스크칼럼] 영덕원전 주민투표! 그날이 아픈가?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5.11.2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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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타임즈 김진철 취재팀장-
【에너지타임즈】영덕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할퀴고 간 상흔이 깊다. 큰 목소리 한 번 내는 것만으로 민망할 것 같은 고요한 고장인 영덕이 원전유치 찬반을 두고 민심이 둘로 나눠졌다. 정부와 한수원이 악수(惡手)에 악수를 거듭하더니 반핵여론은 걷잡을 수 없도록 확산돼 버렸다. 급한 마음에 내놓은 대책은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커녕 되레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이번 주민투표 과정에서 원전사업자와 영덕주민 간 신뢰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과는 주민투표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신뢰가 뒷받침 되지 않은 원전수용성은 언제나 외면받을 수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 아닐 수 없다.

영덕핵발전소유치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일찍이 지난 11일과 12일을 디데이에 맞추고 주민투표를 추진했다. 그 결과 유권자 3만4432명 중 1만1209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반대 측은 투표인명부 기준 60.3%, 찬성 측은 유권자 기준 32.53%로 각각 집계됐다. 특히 투표자 중 91.7%인 1만274명이 반대에 표를 던졌고, 7.7%인 865명이 찬성에 표를 던졌다. 반대 측의 주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것이란 추측은 찬반양측 모두 예측한 부분이기 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투표율은 큰 의미를 가진다.

정부와 한수원 등 찬성 측은 주민투표 이전부터 법적효력이 없어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마땅한 명분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원전사업은 국가사무에 해당하는 탓에 주민투표법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시민단체 등을 주축으로 한 반대 측이 주민투표법에 의거하는 것보다 영덕주민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수준으로 추진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다만 결과는 주민투표에 버금가는 효과가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앞서 삼척(대진)원전에서 주민투표법에 해당하지 않는 이 주민투표가 큰 위력을 과시한 것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한수원이 과할 정도로 오버(?)를 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오버의 결과는 투표율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반대 측도 주민투표에 7000여명이 참여하면 잘 된 것이고 1만 명을 넘으면 대박이라고 할 정도로 투표율이 저조할 것으로 관측됐으나 결과는 1만1209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굳이 승자를 가리자면 반대 측의 압도적인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최근의 보궐선거 투표율 20%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물론 공식적인 주민투표가 아닌 탓에 찬성 측은 이중투표 등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확인할 방법은 묘연한 상태다.

이러한 논란을 뒤로하고라도 이번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높다. 반대 측은 정부와 한수원 등 찬성 측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지난 12일 주민투표 마지막 날 한 투표소에는 반대 측 관계자가 웃는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을 정도였다. 주민투표기간이 하루만 늦춰졌거나 하루가 더 추가됐다면 투표율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특히 찬성 측이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말 것을 정부와 한수원 등과 똘똘 뭉쳐 홍보전을 펼치면서 되레 반신반의하던 영덕주민들이 사실조차 확인되지 않은 온갖 루머에 노출되면서 투표소로 발걸음을 향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나 한수원 등 찬성 측이 반대여론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에 있다. 지난 2012년 영덕이 신규 원전부지로 지정·고시된 후 정부나 한수원이 영덕주민과 얼마나 많은 호흡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주민은 이번 주민투표가 아니었다면 영덕원전이 말없이 취소된 줄 알았다고 할 정도다.

게다가 반대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자 다급해진 한수원은 직원들을 급파해 사회공헌활동 명목으로 음료수 박스를 승용차 트렁크에 한 가득씩 싣고 가가호호(家家戶戶) 방문했다. 한 지역주민은 반대하니 얻어먹을 게 생긴다고 말하는 등 이상한 논리가 영덕 내 퍼졌다. 물론 원전수용성이 높을 때 이 같은 움직임은 원전사업자와 지역주민 간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정책도 시원찮았다. 영덕지역 내 반핵여론이 확산되면서 국무총리가 서둘러 영덕을 방문했다. 다양한 현안문제를 챙겼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33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만들어낸 10대 사업을 영덕에 제안하고 이를 약속했지만 영덕주민들은 싸늘하게 외면했다.

심지어 한 지역주민은 어차피 영덕원전을 건설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반대를 할수록 지원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정서가 이미 영덕지역 내 크게 확산돼 있다. 그러니 투표율이 높을 수밖에…

경제적 효과를 중심으로 한 홍보도 영덕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노인층이 두터운 대표적인 곳이 바로 영덕이다. 장성한 자식들이 이미 도시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경제적인 효과라는 것이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어필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설득력을 가진 루머들이 나돌아 저변에 깔리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가 돼 버린 형국이다. 정부와 한수원의 전략적 부재가 아닐 수 없다.

선거를 앞둔 국회의원도 아무리 지지율이 높아도 표밭을 닦는데 신경을 쓴다. 정부나 한수원도 원전수용성이 높을 때 표밭을 닦아뒀다면 어땠을까. 주민투표를 앞두고 쏟아 부은 예산 절반만이라도 이들과의 신뢰를 쌓는데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아쉬움이 남는다.

영덕주민들의 한 중심축을 이루는 노인층은 경제적인 효과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신뢰다. 어떠한 위험이 닥치더라도 함께 살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부재하면서 이날의 참사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우연찮게 듣게 된 말이 있다. 한수원 직원들이 환경정화활동을 나갔는데 이미 마을주민들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직원들을 위해서 쓰레기가 가득 담긴 마대자루를 서너 개를 쌓아놨다고 한다. 직원들이 고생할까봐 지역주민들이 미리 청소를 한 것이고 사진이 필요할까봐 마대자루를 쌓아뒀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이 이 같은 행동을 하게 된 배경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 마을을 담당하는 직원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이 마을을 방문해 불편한 것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게 바로 신뢰다.

주민투표를 앞두고 가로수면 가로수, 가로등이면 가로등, 담벼락이면 담벼락, 다리난간이면 다리난간, 심지어 영덕고등학교 야구장 펜스에 걸린 현수막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원색적인 문구가 영덕주민들을 자극했다. 그날의 영덕은 이처럼 어수선했다.

영덕주민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주민투표의 결과가 발표되고 모든 상황이 종료된 지난 13일 필자는 영덕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봤다. 사람의 혼을 빼 놓을 것처럼 펄럭이던 현수막은 이미 자취를 감춰버렸고, 이날 비가 내린 탓도 있겠지만 여전히 영덕에는 좀처럼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한수원이 토지보상공고를 내는 등 영덕원전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이번 토지보상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물론 영덕주민들의 민의를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 측이 독자적으로 주민투표를 강행함으로써 영덕주민의 민심을 확인한 것처럼 어쩌면 늦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번 토지보상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영덕주민의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

정부와 한수원은 최대한 낮은 자세로, 진심으로 영덕주민을 만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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