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
<칼럼>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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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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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고려대 교수
농촌의 아낙네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나서 아기의 모습을 보며 “까르르 깎꿍”하며 쉬고 있을 때 시어머니가 끼어든다. “아휴, 우리 손자 나도 한번 안아볼까?”

이 때 며느리가 “어머니, 괞찮아요. 제가 좀 더 않고 있을께요”라고 하면 어리석은 행동이다. 눈치 빠른 며느리라면 “아참, 마당에 널어 둔 고추 걷어야 할 시간이네요. 어머니, 애기 좀 봐 주세요”하며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시어머니가 ‘손자 한번 안아볼까’라고 한 말의 속 뜻은 ‘그만 쉬고 밖에 가서 일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꼭 귀가 먹은 사람만이 아니라 멀쩡한 귀를 가지고도 상대방이 말하는 속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도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감성지능(Emotionel Intelligence)”으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골만(Daniel Goleman)은 ‘타인과의 관계 형성 능력’이 성공과 행복의 90%를 좌우한다고 하였다. 이 감성지능에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입의 말뿐 아니라 속 뜻을 파악하고, 이에 맞게 반응하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퇴근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오늘 길동이 때문에 못살겠어요. 하루 종일 말도 안 듣고, 에어컨도 없는데 날씨는 무덥고…”라고 불만을 터뜨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성지능이 높은 남편이라면 “여보, 오늘 당신 정말 힘들었겠어요. 내가 어깨 주물러 줄께”라는 한마디로 1분만에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다. 에어컨 없는 것을 오늘 탓하는 것은 형식적 이유일 뿐 진짜 속 마음은 ‘내 고생을 좀 알아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남편이 “아니, 길동이 말 안 듣는 것이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닌데, 또 에어컨 없는 곳이 우리 집뿐이요?”라고 화를 낸다면 감성지능이 낮은 사람이다.

영어 표현에는 듣는 것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히어링(Hearing)”과 “리스닝(Listening)”의 차이이다.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hearing)을 히어링이라 하며, 리스닝은 상대방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리스닝이 경청이며 더 발전된 수준이 공감적 경청이다.

경청을 잘 한다는 것은 상대의 가슴 속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고충이나 불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솔직히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경청을 잘 하려면 상대방의 말에서 비언어적 단서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 중에 "이 사람 내부에 지금 진행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이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언어 및 비언어적 단서들에 집중해야 공감적 경청이 잘 될 수 있다.

공감적 경청의 방법에는 그 외에도
(1) 상대방의 장점을 생각하고 우호적 태도로 상대를 바라보라
(2) 이야기 도중에 상대의 화제를 당신의 것으로 변경시키지 마라.
(3) 질문을 하라 등이 있다.

공감적 경청이 되고 나면, 공감적 반응 즉 적합한 반응을 해 주는 것이 가능해 진다. 경청의 최종 목적이 반응을 적합하게 하는 것에 있으므로 공감적 반응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경청 단계에서 상대방의 의도 파악에 실패하는 것은 입으로 하는 말의 내용과 가슴 속에 숨겨진 감정(Hidden Agenda)이 다른 경우에 발생한다. 대화 내용이 단순한 정보교환이 아니라 감정, 느낌, 불만, 가치관 등에 관한 것일 때에는 표면감정과 배후감정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 숨겨진 감정을 파악하여 이를 터치하는 반응을 하는 것이 고품질 대화의 관건이다.

현장 영업에서 돌아 온 박대리가 “과장님, 힘들어서 회사 못 다니겠습니다”라고 하면, 과장은 “회사 사표를 낸다는 말인가?”라고 하기 보다 “박대리, 오늘 상담한 그 고객 참 힘들게 하지?”라고 말해야 한다.

공감적 경청과 반응 능력을 키우면 엄청난 이익이 돌아온다. 희대의 스캔들 메이커 카사블랑카와 같이 수 많은 연인들의 마음을 휘어 잡을 수도 있으며, 가정에서는 화목을, 직장에서는 성공적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공감적 반응능력을 어떻게 증대시킬 수 있을까? 아쉽게도 간단한 묘방은 없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조금씩 증대하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의 열매는 다른 어떤 것 못지 않게 우리의 삶에 유익을 가져다 준다.
인간관계 능력을 증진하는데 하늘 아래 어떤 것 보다 나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다. -존 록펠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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