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인큐베이팅 과정이 필요한 신재생에너지
<칼럼>인큐베이팅 과정이 필요한 신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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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7.2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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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휘곤 한국태양광발전업협동조합 사무차장-

우리속담 중에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이 두 속담 속에 담긴 선조들의 경험은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듯 보인다.

화려한 춤사위와 흠잡을 데 없는 외모를 내세워 음악과 오락프로그램을 뛰어넘어 TV화면 모두를 점령해버린 아이돌들과 옷을 입을 때나 액세서리를 착용할 때도 속칭 ‘깔맞춤’이라고 해서 색깔의 조화를 따지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외모가 가장 큰 경쟁력인 나라가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는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건물과 시설물을 설치할 때도 필수적으로 디자인적 요소에 대해 고려하고 있고 덕분에 관급공사를 주로 하는 기업들 상당수가 디자인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우리는 ‘눈으로 먼저 느끼고 눈이 먼저 만족해야 그 다음 수순으로 나아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외적인 면을 먼저 따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하나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민족은 고려 말 성리학이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 ‘관혼상제’를 비롯한 거의 모든 생활에서 예(禮)를 가장 중시한 삶을 살아왔었다. 60, 70년대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찼던 시기에도 다른 것은 몰라도 혼사와 초상을 치를 때만큼은 빈자와 부자 모두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허례와 허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정도이니 얼마나 ‘남의 눈’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이로 인한 낭비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가정의례준칙’이란 법률을 만들어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시도까지 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결혼식과 지나친 장례비용 문제가 아직까지 사회문제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더 의식하는 삶을 쉽게 버리진 못할 듯하다.

물론 눈이 즐거운 환경에서 사는 것이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본질과 외형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질문 한다면 대부분 본질이라 답하는 것처럼 화려한 겉모습이 내실의 모자름을 덮어주지는 못한다. ‘속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도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서 제법 많은 ‘빛 좋은 개살구’와 ‘속빈 강정’이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타의, 그것도 공공기관의 요구 때문에 본질의 충실함을 포기하면서까지 겉모습을 꾸며야하는 경우가 가장 문제이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각종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신재생에너지원을 활용한 시설을 자주 접할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외형에 대한 제한조건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태양광가로등 설치공사의 경우, 전문가라면 가로등이 필요한 곳 중에서 가장 발전이 잘 될 수 있는 설치위치에 성능 좋은 모듈과 축전지를 바람 등 자연재해에 대해 안전성을 갖도록 설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공공기관에서는 설치위치부터 효율보다는 그럴 듯한 위치를 우선 생각하고 제품의 성능보다는 멋진 디자인을 선호한다.

충분한 밝기로 밤새 불을 밝힐 수 있는 성능의 가로등은 축전지 부피가 너무 커서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부족한 용량의 작은 축전지로 교체되고 결국 새벽시간이 되면 불이 꺼지는 가로등으로 전락하고 만다.

건물 한 층이 충분히 사용할 정도의 태양광발전이 가능한 건물에도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이도 저도 아닌 용량만 설치한다던가(물론 예산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꽃모양 또는 공공기관을 상징하는 도안으로 모듈을 배치한 공원의 태양광발전설비로부터는 어떠한 기능적 고려도 찾아보기 힘들다.

공공부문에서 갖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태도가 이렇다면 앞으로 도로 양 옆을 활용하여 태양광발전설비를 배치하고 전기자동차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쏠라 하이웨이’ 같은 새로운 개념의 사업은 대한민국에서 당분간 추진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도로 주변에 죽 늘어선 시커먼 태양광모듈은 미관상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정상궤도에 들어서는 단계에 있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기능성 외에 추가적인 요구가 앞선다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닐까 한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산업은 외형보다는 기능적 만족을 우선하는 초기의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디자인과 품질 모두에서 비교우위를 갖추는 성숙기에 접어들게 된다.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에게도 또한 이러한 인큐베이팅 과정이 필요하다.

비록 멋진 디자인은 아니지만 불 꺼질 걱정 없는 태양광가로등이 여기저기에 많이 설치되고 그렇게 해서 ‘이제는 태양광가로등을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면 굳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멋진 디자인의 성능 좋은 제품이 양산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이라도 신재생에너지산업에 대한 채찍질은 ‘외형보다는 먼저 내실을 키우라’는 것에 그치길 바란다.

‘사랑의 매’라도 맷집이 생겨야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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