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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기고
<제3회 에너지사랑 문예공모전 수상작 - Work-a-Holic(일중독증)>-송길목 한국전기안전공사 전기안전연구원 진단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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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1  12: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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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나 사무실 여기저기는 정리되지 않은 채 적막하기까지 하다. 전쟁 후의 모습처럼 널브러진 종이와 펜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한 것 마냥 외롭게 느껴진다.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밤늦게 업무와 사투를 벌이고 보고서를 마무리하는데 여념이 없다. 집으로 가지 못한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이번 주 주말에는 마무리하지 않은 일로 사무실에 출근도장을 찍어야만 한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밀물과도 같은 연구를 한지도 어언 15년이 넘어섰다.

남들은 좋은 직장이라고 하지만 수많은 보고서와 실험·출장 등으로 파김치가 되어 마음 놓고 쉰 적이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다. 가끔 몇몇 직원들이 야근한다고 남아서 자리를 채우곤 했는데 최근 들어 밤 시간에 남아 있는 연구원들을 볼 수 없다. 프로젝트가 대부분 완료가 되어서 그런가보다. 물론 다른 팀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질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열두시가 넘은 시각,

대충 일은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서면서 경비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동작할 수 있도록 복도와 외부로 통하는 곳의 문들을 확인한다. 길고 긴 복도 양 옆에는 실험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덩그러니 무심한 장비들만 놓여 있다. 복도 끝 문을 열면 베란다가 있어서 사소한 대화를 나누거나 담배 피는 장소로 활용된다.

문이 잘 닫혀 있는지 확인해 다시 엘리베이터까지 긴 복도를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간다.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딸깍!’오늘도 보이지 않게 열려져 있던 문이 기분 좋게 닫힌다. 신분증을 가지고 문을 열어야 하는 불편함으로 인해 연구원들이 살짝 문을 잠그지 않고 열어둔다. 밤늦은 시간에 긴 복도를 걷고 있으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며칠 전부터 바닥에 구멍 난 단화가 바닥을 스치면서 내는 마찰음을 들을 때면 듣기 거북한 소리가 복도의 벽과 천장을 돌아 울리기를 반복한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삐익! 삐익!’하는 신경질적인 소리는 벽면에 부딪혀 음을 재생하고 또 재생하면서 복도 전체에 퍼진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주말에는 신발을 하나 사야겠다. 복도 끝 문을 닫은 후 돌아서면 몇 걸음 걸어서 우측 벽을 보게 된다.

다른 어떤 곳과 비교될 게 없는 평범한 장소에서 뭔지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그냥 외롭고 고통스러우면서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은 그런 곳이다. 집에 있는 딸이 보고 싶어진다. 자신을 몰라주는 마누라가 밉기도 하지만 가끔은 보고 싶어진다. 이런 기분이 든 것도 한 달이 넘어서고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 우울증 초기증세일지도 모른다.

복도의 또 다른 끝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1층으로 내려간다. 3층에서 1층이긴 하지만 복도로 걸어서 가기엔 뭔가 섬뜩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오늘도 급하게 이래저래 바빴는데도 무엇 하나 마무리되는 일이 없다. 내일이면 또 보고서를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마무리가 되어야지 주말엔 보고 싶은 딸이라도 보러 집으로 갈 수 있다.

근처에 있는 사택으로 발을 옮기면서 퍼런 가로등 불빛이 발아래에 닿아 있는 걸 보며, 무심한 시간이 빨리도 간다는 생각이 든다. 사택에는 동료들이 잠을 자고 있는데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걸음을 옮긴다. 이른 새벽엔 잠에서 깨어 피곤함을 흔들고는 옷을 입고 동료들이 잠든 틈을 타서 조심스레 나온다.

아직 모두가 꿈나라에 있다. 같은 직장 동료들이지만 얼굴을 마주하여 정답게 저녁이라도 먹어 본지가 얼마인가 싶다. 가끔 사택에서 사적인 술자리를 마련하여 술 한 잔 기울이고 했었는데... 이번 프로젝트의 보고서가 끝나면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할까 싶다.

밖은 또 어두워졌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창밖을 보는 마음도 착잡해진다. 따끈한 블랙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끝나지 않은 일에 대해 고민한다. 복잡한 머리를 털어버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에 대한 관심을 줄여야 하는데 책상 앞에 놓인 메모지에는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다린다.

오늘 따라 유독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들, 딸과 아내가 왈칵 그리워진다. 중년이 넘어서 그런지 눈물샘이 풀렸는지 촉촉이 적어드는 눈시울을 슬쩍 옷소매로 닦는다.

나 혼자 남은 것 같은 느낌이, 슬픔이, 아픔이 동시에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때도 비가 내렸다. 늦가을이라고 하기엔 겨울이 더 가까운 계절이지만, 밖에서 내리는 비는 굵고 차디찬 장대비가 무심히 내린다. 낮 동안 무엇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바쁘게 혼줄 빼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다시 기획하고 약간의 수다 등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일과 일 사이를 정리하다보면 다른 일에 집중하기 위해선 지나간 일등을 빨리 정리하고 잊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분주하게 움직인 것 같으면서도 어슴푸레 기억할 뿐 개인적인 취미나 교양을 쌓기 위한 방법도 여러 가지 있겠지만 현재의 나로선 곤란하다. 다 놓으면 될 일도 관둘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책상 앞으로 몸을 고정한다. 적막한 사무실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들린다. 오늘따라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남달리 업무처리도 빠르고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요즘은 왜 이리 업무가 더딘지. 집중력이 많이 부족하여서 그런가 보다.

일찍 집으로 가서 쉬어야 하는데 몸은 신호를 보내지만 의자에 붙들린 이후로 일어설 줄을 모른다. 열두시가 넘어섰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린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보고서도 얼추 정리가 되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다시 복도로 나와 끝에 보이는 문의 여닫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걸어간다. 여전히 돌아선 몇 걸음 뒤의 우측 벽은 쓸쓸하고, 슬프고, 눈물이 난다.

엘리베이터로 돌아와서는 버튼을 누른다. 찬 공기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뿜어져 나오고 스산한 기운은 몸을 휘감아 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통거울에는 입김이 서린 것처럼 하얗고 푸른 성에가 뽀얗게 퍼져 있고 바닥에는 물기가 있다. 다시 문이 닫히고 1층을 누른다. 1층에 도착하여 문이 열리자 앞에는 오랫동안 기다린 것으로 생각되는 마누라가 비에 젖은 몸으로 하얀 얼굴로 맞이한다.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모습이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차편도 많지 않은데 온다면 미리 얘기를 하지.”

“은솔 아빠, 이제 집에 가요.”

슬픈 듯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막 정리가 돼서 금주에는 집에 갈 생각이었어.”

평상시 같으면 잔소리가 심했을 터였지만, 무표정한 아내의 얼굴에서 입술이 움직인다.

“응, 그럼 이제 가야지. 은솔이도 밖에 있어”

은솔이가 평일에 같이 오려면 유치원에 현장학습이라도 받아서 왔을 텐데 이렇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왔을 때는 무언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무슨 일이 있어? 전화라도 주어야지.”

“...”

“얘가 춥겠네. 자 빨리 가자”

밖을 나가니 아직 어리광 부릴 아이가 얌전히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 아름 안아주자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딸의 몸이 차갑다. 아내는 굳이 나의 손을 잡고 걸어가잔다. 아이를 안고 아내의 손을 잡은 후 난 찬찬히 어두운 길을 걸어갔다. 아내의 손목에 상처가 있었나 생각하면서....

“이제 두 달이 다되어 가네.”

“아직도 엘리베이터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그러나?”

“팀장 사모님이 가족과 함께 그 일이 있은 이후론 그런 일이 없다네 글쎄. 하여간 난 아직도 밤에 남아 근무하기가 무서워.”

“난 퇴근 전에 어두워져도 무서워. 하필 복도에 쓰러져 돌아가시는 바람에 매일 밤 삐익!, 삐익! 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잖아?”

“집안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야.”

“사모님이 팀장님 돌아가신 후에 우울증으로 꽤 시달렸다지?”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생을 끝내다니 안됐어 정말.”

김 대리는 담배를 끄고 복도에 들어서면서 흘깃 우측 편을 본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던 팀장의 죽음이 잠시 스쳐 지나간 일처럼 아련해진다. 너무 빨리 잊혀지는 걸까? 공석인 팀장 자리를 벌써부터 생각하는 직원들이 있다. 잔인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근데 팀장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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